정년퇴임식 자리, 후배 동료들이 한 사람씩 단상에 나와 그가 회사와 동료들을 위해 얼마나 큰일을 이루었는지를 말하며 한없는 존경의 눈빛으로 그를 바라본다. 그러고는 그를 향해 다가가 포옹하며 석별의 아쉬움이 담긴 눈물을 흘린다. 기립박수와 환호성 속에서 꽃다발을 안고 퇴장하는 그의 곁에 회사 사장이 다가서 그 동안 수고했다고 치하하며 이제부터 다른 형태로 회사를 위해 일해달라고 요청한다. 그간의 경험 속에 담긴 지혜와 통찰력으로 경영자에게 조언하는 고문직을 제안한 것이다.
사진제공=한국은퇴설계연구소
은퇴의 본질이란 이러한 장면이다. 퇴임식이 있든 없든 마찬가지다. 한국 사회의 평균적인 은퇴자들과 은퇴를 목전에 둔 사람들은 이런 존중을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 그 사람이 고위직이든 말단의 기능직이든, 한 직장에서 수십 년을 근속했든 아니면 여러 직장을 거쳤든 마찬가지다. 우리 사회는 은퇴자와 그 이후의 삶에 대해 존경을 표해야 한다. 은퇴하는 사람 스스로도 자신과 자신의 이후 삶에 대해 존엄을 가져야 한다.
어린 시절, 아버지들은 하루 12시간씩 맞교대를 해가며 힘겨운 노동을 했다. 휴일이라곤 첫째 셋째 일요일, 한 달에 이틀뿐이었다. 어머니들은 새벽부터 깨어나 출근하는 남편과 등교하는 자식들을 분주히 챙겼다. 힘든 농사일이나 부업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분들이 세계 최빈국 한국을 잘사는 산업국가로 만들었다. 이미 은퇴한 60~80대가 그들이다.
그 이후 세대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어려운 와중에도 열심히 공부하고 일했다. 선배들이 만든 뼈대에 살과 근육을 붙였다. 민주주의가 꽃피울 수 있도록 희생을 감수한 이들도 많다. 사회 곳곳의 조직에서 경쟁력이 발휘되고 합리적이고 견고하며 민주적인 문화가 생길 수 있도록 헌신했다. 이들이 막 은퇴하기 시작했거나 은퇴를 앞둔 50대들이다.
현재 한국의 부와 창의적 혁신, 자유롭고 화려한 문화는 모두 선배 세대들의 피땀을 에너지원으로 이루어졌다. 유능하고 성실하고 헌신적이며 근검하고 이웃에 대한 배려와 애국심이 넘치는 훌륭한 선배들이 이 땅의 풍요와 활력을 창조했다.
한국 사회는 은퇴한 세대들, 은퇴를 앞둔 세대들을 존경해야 한다. 그리고 이들의 역할이 커질 수 있도록 구체적 방안을 찾아야 한다. 훌륭한 이들이 은퇴했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보잘 것 없는 사람으로 변하지는 않는다. 은퇴자의 인품과 능력과 지혜가 우리 사회의 모든 영역에 스며들어 또 다른 발전을 이루도록 사회 전체가 합심해서 노력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은퇴설계는 사회의 중요한 역할이기도 하다. 그리고 청춘을 바쳐 열심히 일한 사람들이 은퇴 후에 부와 존경을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을 젊은 세대에게도 분명히 보여주어야 한다.
은퇴한 사람들, 은퇴를 앞둔 사람들도 마음을 다시 추슬러야 한다. 분별없는 사람들의 잘못된 인식이나 부정적 이미지, 편견과 차별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스스로 만든 부정적 이미지를 극복해야 한다. 은퇴자로서 존엄을 회복해야 한다. 열심히 살아온 인생을 반추하며 자긍심을 품고 은퇴와 은퇴 후의 삶에 대해 긍정적 이미지를 가질 필요가 있다. 그간 쌓아온 경륜과 통찰력, 지혜, 인맥, 기술과 노하우가 다른 영역에서 절실히 요구되는 것임을 알고 자신감과 적극성도 발휘해야 한다. 이러한 긍정적 자화상과 자기 존중의 토대 위에서 본질적인 은퇴설계가 시작될 수 있다.
도움글=한국은퇴설계연구소 권도형 대표('은퇴설계를 위해 정말 10억이 필요합니까?'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