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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에만 집중된 은퇴 설계, 오히려 삶의 불안 부추겨】
“한국인의
은퇴준비지수는 57점에 불과, ‘주의’ 단계” “한국 노인 빈곤율은 45.1%” “은퇴 준비는 30대부터”.
한국인의
노후에 관해 연일 언론 매체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문구들이다. 고령화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노인복지 정책이 미비한 상황에서 노후 준비는 전 사회적 관심사지만, 한국의 은퇴
설계가 유달리 ‘돈’에 집중돼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의 은퇴 관련 연구소나 공공기관이 실시하는 은퇴교육 프로그램은 대부분 재무 설계, 세무에 치중돼 있다. 권도형 한국
은퇴설계연구소 대표(39)는 “은퇴를 앞둔 베이비붐 세대들은 학력도 높고 건강 상태도 좋은 산업역군들로 현재의 노인들과는 달리 은퇴 후에도 창업·창직을 통해 사회에 기여할 역량이 충분하다”며 “사회적으로 은퇴자들에게 동기를 심어줘야 하는데, 자꾸 노후를 빈곤과 공포의 관점에서만 다루니 모두가 인생을 노후에 저당잡혀 산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사회에 만연한 돈 중심의 은퇴 설계와 공포 마케팅의 폐해를 지적한 저서 <은퇴설계를 위해 정말 10억이 필요합니까?>에서 “금융회사들이 지금 공격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공포 마케팅은
은퇴자금(그조차도 잘못 설계된)에만 초점을 맞춘다”고 지적했다. 현재 미래에셋증권, 우리투자증권, 한국투자증권, 삼성생명 등 국내 대부분 금융·보험사들은 산하에 은퇴연구소를 두고 있다.
연구소들은 한국인의 은퇴 준비 수준이 미흡하다는 내용의 보고서나 은퇴 준비를 위한 전략을 주기적으로 발표한다. 지난 5일 삼성생명 은퇴연구소는 국민의 ‘종합
은퇴준비지수’는 57점에 불과하다고 발표했다. 연령별로는 30대가 가장 낮고 50대가 상대적으로 높아 연령이 낮을수록 은퇴 준비 수준이 미흡하다는 조사 결과였다. 반면 지난해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가 발간한 ‘2013 한국 비(非)은퇴가구의 노후 준비 실태’ 보고서는 나이가 많을수록
노후준비지수가 낮고, 평균 노후준비지수가 40점으로 심각한 수준이라고 분석했다. 이처럼 민간 은퇴연구소들의 조사 결과 신뢰도를 검증하기도 어렵다. 또 이들이 내놓는 보고서나 은퇴 설계 전략에는 ‘노후 준비는 30대부터’ ‘리스크를 감수하고 투자하라’는 등의 대목들이 등장한다. 언론사들은 이를 곧잘 인용해 보도한다.
전문가들은 노후에 대한
불안과 노인복지 문제를 정부가 나서 해결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기웅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경제정책팀 부장(33)은 “일부 금융사나 기업들이 소득이 없는 은퇴자들에게서 수익성을 추구하려다 보니 은퇴 후 삶의 불안을 부추기는 마케팅을 시도한다”며 “정부에서 노후에 대한 불안과 노인복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도적인 뒷받침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권 대표는 “연금만이 은퇴설계의 해결책이 아니고, 1차 퇴직은 은퇴가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황금기의 문이 열리는 순간이 될 수도 있다”며 “본인 퇴직금을 이용해 창업할 수 있을 만한 아이디어를 공부하고, 열심히 자기계발을 하는 등 은퇴 이후에도 사회에 쓸모있는 인간으로 자리 잡을 수 있는 전인적 차원의 은퇴 설계를 지향해야 한다”고 밝혔다.